톰 라이트를 보면서 새 관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가 바울을 해석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인데 그가 쓴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책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이 책은 바울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저작이다. 라이트는 이 책에서 바울의 서신을 단편적인 교훈이나 윤리적 지침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역사 안에서 드러나는 종말론적 사건으로 해석한다.
그동안 바울 서신을 읽으면서 교회의 문제가 있었고, 그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신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당시의 시대의 문제가 오늘날도 여전히 되풀이되며 인간의 문제가 크게 다르지 않음으로 우리에게 적용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로 이해했다. 그중에도 물론 큰 틀에서 이해하는 신학적인 이슈들과 주장들에 대해서도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라이트는 바울이 쓴 서신을 단지 문제가 있는 교회에 보낸 서신 정도가 아니라 종말론적 사건으로 본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바울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단순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종말론적 사건이다. 이는 마치 새로운 창조와 같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이 새로운 시대에 속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말론적 관점으로 서신을 해석하며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 서신에서 드러난 교회의 문제를 단순히 그 당시 상황에 국한된 문제로만 보지 않고 더 깊은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바울 서신을 더욱 풍부하고 심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대로만 놓고 보면 문제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의 주장은 비판을 이끌고 있는데 어떤 이들은 그의 책은 읽지도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말하는 이 책 외에도 새관점에 대한 것이 전통적인 신학과 다른 측면이 많아서 싸잡아 함께 비판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비판하고자 하면 비판하지 못할 신학이 어디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라이트의 말대로 종말론적으로 본다면 이런 비판이 따른다. 너무 미래 지향적으로 해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같은 종말론적인 사건의 시급성을 간과한다는 비판이다. 라이트가 너무 미래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같은 종말론적 사건의 시급성을 간과한다는 말이다. 마치 미래에 일어날 일만 집중하다 보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책임감과 시급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소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라이트가 주장하는 현재적인 종말론은 결코 현재의 삶을 소홀히 하거나, 미래의 일에만 집중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현재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고 예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를 한다.
또 라이트가 역사적 연구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성경 본문 자체의 의미를 간과한다는 비판이 있다. 즉 예수의 역사적 사실만을 밝히는데 집중한 나머지 성경 본문이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진 본문을 해석하는 일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예수의 인성만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한다. 역사적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더 큰 비중을 두어서 예수의 신성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새로운 이론에 대한 반발이 많을 것이다. 기존에 이해하던 해석과 틀이 있는데 완벽한 것은 없을 것인데 오히려 개혁주의자들은 그것을 수호하는 일에 집중해서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한다. 이런 면에서 균형이 중요한다. 라이트의 주장을 무시하기 보다 오히려 함께 살펴보면서 균형을 잡으면 좋을 것이다. 바울 서신을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면서도 그 시대에 대한 해석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예수님의 인성만이 아니라 그분의 신성도 함께 살펴봄으로 그런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다.
라이트의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는 이런 면에서 바울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준 것으로 보인다. 좋은 점과 함께 바울의 시대를 이해하고 종말론적이며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의 말씀의 이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관점인지가 중요한 것 같은데 고루고루 균형 잡힌 생각으로 바울의 복음을 살펴보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면에서 라이트의 책은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