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이야기

[신학이야기] 새관점이 무엇인가? 행위구원론을 말하는 것인가? (feat. 유보적칭의론까지 살짝 덤으로...)

Reading Dad 2024. 10. 31. 16:46

 

톰 라이트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일으킨 논쟁이 무엇인가? 살펴보니 새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새 관점이 무엇이며 기존에 말하는 신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라이트는 바울 신학에 대한 기존 해석에 도전하며 새 관점이라는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사실 라이트가 처음은 아니다. 20세기 후반 등장한 바울 신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E.P. 샌더스 등에 의해 기존의 개혁주의 구원론이 유대교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 비판하며 바울의 서신을 유대교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해하는 시도이다.

 

 

바울 시대의 유대인들은 단순히 율법을 지키는 의식적인 종교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신앙인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으며 율법은 그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새 관점에서 칭의는 단순히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 회복으로 이해한다. 즉, 칭의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새 관점은 율법을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본다. 율법은 하나님이 성품을 반영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구원은 단순히 죄에서 해방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가족으로 초대받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는다. 구원은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공동체적인 것이 된다. 개혁주의 구원론과 무엇이 다른가? 보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새 관점은 좀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며 율법에 대한 관계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보면 율법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기능을 한다고 보지만, 새 관점은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방식이라고 본다. 개혁주의는 칭의를 법정적인 용어로 이해하고, 믿음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강조하는 반면, 새 관점은 칭의를 더욱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믿음과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로 인해 새관점은 구원론에 있어서 행위를 강조한다는 행위 구원론 논쟁을 일으켰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이해하는 것에 믿음 외에 행위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새 관점은 율법을 행위를 통한 의롭게 됨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새 관점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론에 있어서 명쾌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까?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받는다. 그런데 새 관점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회복이다. 즉, 칭의가 믿음을 통해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해한 것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이렇게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새 관점에서 말하는 구원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 백성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즉, 구원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즉, 아직 내가 구원받은 것은 모른다. 내 모든 삶이 끝나보아야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을 의심하지 말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한다. 한 가지 구원이 단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 전체를 포함한다. 즉, 믿음과 함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구원의 중요한 부분이다. 최종적인 구원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정리하면 새 관점의 구원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인 구원으로 이해하며 구원은 믿음과 삶이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 즉, 믿음은 삶의 변화를 가져오고, 삶의 변화는 믿음을 더욱 깊게 한다. 따라서 구원은 단순히 믿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삶 전체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위 구원을 콕 찝어서 말하지는 않는다. 좀 더 큰 관점에서 구원을 이해한다. 그동안 개혁주의 구원론이 믿음으로의 구원을 이야기하며 행위를 약화시키는 주장. 마음대로 살아도 이미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주장 속에서 성화를 강조하는 것에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믿음으로 구원을 약화시키지 않고 주장하며 행위까지 동반하는 삶의 모습을 주는 신학이론이라 좀 더 세상 속에서 합리적으로 들리기는 한다. 물론 성경의 지지를 받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부록

유보적 칭의론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얻었지만 이후의 삶에서 믿음대로 살지 않으면 최종 심판 때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즉, 칭의는 조건부이며 믿음과 함께 성화된 삶을 살아야 최종적인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제기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알려지게 된 것은 김세윤 교수를 통해서이다. 성경 구절 중 야고보서 2:17절 믿음이 행위 없이 있으면 죽은 것이라 이 구절을 근거로 믿음과 행위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믿음만으로 구원은 불가능하며 믿음에 합당한 행위가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은 사람들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며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칭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다시 율법주의로 회귀한다는 위험이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야고보서 2:17절에 대해서도 칭의와 성화를 연결하는 근거로 사용한 것은 성경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받는다. 결정적으로 유보적 칭의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속적인 불안감을 주며 구원의 확신을 흔들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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